조선 시대 문헌 속 거문고 기록 정리: 악학궤범·세종실록·풍류 문화 사료 해석

조선 시대 문헌은 거문고를 어떻게 기록했을까?

조선 시대 문헌 속 거문고 기록은 악기 구조와 음률뿐 아니라 당시 사회에서 음악이 지닌 의미를 보여주는 중요한 사료이다. 특히 악학궤범세종실록, 그리고 풍류방 관련 문헌들은 거문고가 왕실·선비·예술 문화 전반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했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이번 글에서는 이러한 문헌들을 바탕으로 거문고의 실체적 모습을 더 자세히 살펴본다.

 

악학궤범에 나타난 거문고 기록

악학궤범(樂學軌範)은 조선 성종대에 완성된 음악 백과사전으로, 거문고에 대한 가장 구체적이고 체계적인 공식 기록을 담고 있다. 기존 연구와 악기 제작에 직접 활용될 만큼 사료적 가치가 크다.

① 거문고의 실제 치수와 구조

악학궤범 권5의 기록에 따르면 거문고는 총 길이 약 4척 8촌(약 145cm), 앞폭 7촌·뒷폭 6촌으로 시작과 끝 폭이 다르게 제작되었다.

울림판은 오동나무, 측·바닥판은 단단한 목재를 사용하며, 괘는 밤나무 또는 대나무로 만든 16괘를 기준으로 한다.

이러한 수치는 오늘날의 표준 거문고 제작 기준과 거의 동일하다.

② 줄의 명칭과 기능

문헌에는 문현·유현·대현·괘상청·괘하청·무현이라는 여섯 줄이 명시되어 있으며, “문현을 기준으로 음을 맞춘다(以文絃爲準)”라는 기록이 남아 있다.

이는 문현이 조현의 표준음 역할을 했음을 의미하며, 현대 연주 방식과도 일치한다.

③ 연주 자세와 술대 사용법

“왼손으로 줄을 누르고(左手按絃), 오른손으로 술대로 튕긴다(右手撥之)”라는 기록을 통해 현재의 연주 자세와 동일한 방식이 이미 조선 전기에 정립되어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그림을 통해 악기의 위치, 몸의 방향, 손 모양까지 표현되고 있다.

악학궤범의 기록은 단순한 설명을 넘어, 거문고가 국가 제례와 연회에서 어떤 표준을 따랐는지까지 제시하기 때문에 음악사적 의의가 크다.

 

세종실록에 기록된 거문고의 역할

세종실록에는 세종이 음악 제도를 전면적으로 정비하는 과정에서 거문고가 여러 차례 언급된다. 특히 음률 개편과 악기 편성 정리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는다.

① 율려(음률) 개혁과 거문고 음정 정비

세종은 새로운 12율관을 제작해 국가 표준음을 정비하면서, 거문고를 포함한 현악기의 음정이 이에 맞도록 조현하도록 명령했다.

실록에는 “현악의 음을 새 율관에 따라 조정한다”는 내용이 등장하며, 이는 거문고 조현법이 국가 차원에서 표준화되었음을 의미한다.

② 궁중 음악 편성에서의 비중

세종실록 악학 개편 기록에는 “거문고를 중다히 배치한다”는 표현이 나오는데, 이는 궁중 의식과 정재(궁중무용)의 반주에서 거문고가 단순 보조 악기가 아닌 핵심 음색층이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현악의 ‘심후(深厚)’한 성질이 마음을 안정시키고 음악의 중심을 잡는다고 설명한 부분도 있다.

③ 정재 반주에서의 역할

정재에서는 박과 관악이 주선율을 담당하고, 거문고는 그 아래에서 음색과 흐름을 정리하는 역할을 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는 현대 국립국악원의 정재 반주 편성과 동일한 전통을 가진다.

풍류방 기록 속 거문고

문인들의 시·산문 속 풍류방 기록은 거문고가 조선 선비 문화의 정서적 중심에 있었음을 보여준다. 유성룡의 징비록, 허균의 성소부부고, 여러 문집들에는 거문고를 켜며 시를 읊고 자연을 감상하는 장면이 빈번하게 등장한다.

특히 다음과 같은 표현을 자주 볼 수 있다.

— “밤비 소리와 거문고의 울림이 서로 화한다”
— “달빛 아래 거문고를 켜며 마음을 씻는다”

이러한 표현은 거문고를 단순 악기가 아니라 ‘정신 수양’과 ‘자연 관조’의 매개로 보았던 조선 문인들의 관점을 보여준다.

 

문헌을 통해 본 거문고의 조선 시대 위상

악학궤범은 거문고의 제도적 표준을, 세종실록은 국가 음악 정책과 역할을, 풍류방 기록은 생활 속 문화적 위상을 보여준다. 이 세 축을 합치면 거문고는 조선 시대 사회 전반에서 다음과 같은 의미를 가졌음을 알 수 있다.

  • 궁중에서는 의식과 음악 질서를 상징하는 악기
  • 선비 사회에서는 정신 수양과 풍류의 중심
  • 예술적 측면에서는 정악의 기준음과 음색의 중심

이처럼 문헌 기록을 종합적으로 분석하면 거문고가 조선 시대 음악과 미학, 정신문화 전반에서 얼마나 핵심적 존재였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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